책소개
이 책은 1981년 중국 인민문학출판사 간 ≪루쉰전집(魯迅全集)≫ 제1권 ≪무덤(墳)≫을 원본으로 하여 거기에 실린 <악마파 시의 힘>을 완역한 것이다.
<악마파 시의 힘>은 원래 문예잡지 <신생>에 실을 원고의 하나로 집필되었으나 잡지의 발간이 수포로 돌아가자 1908년 당시 일본에서 발행되던 중국인의 동향(同鄕) 잡지인 <허난(河南)>에 발표되었다. 이 글은 나중에 잡문집 ≪무덤(墳)≫(1927년)에 실려 출판되는데, ≪무덤≫은 루쉰의 대표적인 잡문집으로서 그 스스로가 말했듯이 논문의 성격에 가까운 에세이집이다. ≪무덤≫은 루쉰의 여타의 잡문집에 비해 역사적 논거와 차분한 논리가 돋보이며, 당시의 세계문화 및 중국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루쉰의 심오한 이해와 통찰을 담고 있다.
200자평
루쉰은 일본유학시기에 외세의 침탈로 인해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는 중국 민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정신의 진작이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그는 악마파 시인들을 주목했는데, 그들은 ‘반항에 뜻을 두고 행동에 목적을 둔’ 시인들로서 그 정신을 중국에 소개함으로써 국민정신을 진작시킬 수 있다고 여겼다. 영국의 악마파 시인 바이런, 영국의 셸리, 러시아의 푸시킨과 레르몬토프, 폴란드의 미츠키에비치와 슬로바츠키, 헝가리의 페퇴피 등의 독
지은이
루쉰은 1881년 중국 강남의 문화 명승인 사오싱(紹興)에서 한 사대부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18세 때 난징에서 본격적으로 근대과학을 배우기 시작해 이후 관비 유학생으로 도쿄 고분학원(弘文學院)에서 일본어 및 기초 지식 과정을 수료한다. 이후 그는 의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고 센다이의학전문학교(仙臺醫學專門學校)에 입학하지만 재학 중 한 수업 시간에 본 슬라이드에서 스파이 노릇을 했다는 죄목으로 일본 군인한테 공개 처형을 당하는 동포를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보고 그는 큰 충격을 받는다. 이때 루쉰은 중국인의 몸을 치료하는 일보다 그들의 마비된 정신을 각성시키는 일, 즉 정신 계몽이 더욱 시급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침내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문학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후 그는 도쿄에서 문예 잡지 발간을 기획하며 정신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애국주의적 열정을 호소하는 글들을 발표할 뿐만 아니라, 동유럽의 단편소설을 번역해 출판하는 등 매우 열정적으로 문예운동에 투신한다. 귀국 후 루쉰은 고향에서 화학과 생물학 교사로 재직하면서 당시 혁명 분위기가 한창 고조되고 있는 중국의 현실을 목도하고 자신도 혁명에 적극 가담하는데, 그 혁명이 바로 1911년의 신해혁명(辛亥革命)이다. 하지만 혁명 후 제도는 바뀌었어도 군벌과 타협한 근본적 한계를 갖고 출범한 혁명정부이기에 개혁의 움직임은 기대 이하였고, 나중에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억압적이어서 다시 그에게 커다란 실망감과 깊은 회의감을 느끼게 했다. 이듬해 중화민국 교육부가 베이징(北京)으로 옮겨 가면서 당시 교육 총장이었던 차이위안페이(蔡元培)의 초빙으로 교육부 첨사(僉使) 발령을 받고 베이징으로 거처를 옮긴 루쉰은, 직무 외 대부분의 시간을 고서(古書) 정리나 비석 탁본, 골동품 수집 같은, 전통 문화를 정리하는 일로 보내며 몇 해 동안 침잠의 시간을 갖는다. 그러던 어느 날 ≪신청년(新靑年)≫이란 계몽 잡지 발간을 준비하던 친구의 부탁으로 단편소설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것이 중국 최초의 현대 소설인 <광인일기(狂人日記)>다. 1926년 돤치루이(段棋瑞) 정부의 시위대 유혈 진압에 항의하는 글을 발표했다가 수배령이 내려지자 루쉰은 베이징을 떠나 아모이(廈門)와 광저우(廣州)로 잠시 피신했다가 그 이듬해인 1927년부터 상하이(上海)에 정착한다. 그는 상하이에 있는 동안 창조사(創造社)나 태양사(太陽社)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인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같은 우익 그룹과 논전한 것은 물론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 등과도 끊임없는 논쟁을 벌였다. 1936년 10월 19일 55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그의 장례식은 민중장(民衆葬) 형식으로 치러졌고, 그의 치열했던 작가 정신은 ‘민족혼’이란 이름으로 후대 중국 작가들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옮긴이
홍석표는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중국의 근대적 문학의식의 형성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천상에서 심연을 보다 – 루쉰의 문학과 정신』(2005), 『현대중국, 단절과 연속』(2005), 『중국의 근대적 문학의식 탄생』(2007), 『중국현대문학사』(2009), 『중국 근대학문의 형성과 학술문화담론』(2012) 등이 있다.
차례
악마파 시의 힘(摩羅詩力說)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대개 인류가 후세 사람들에게 남겨놓은 문화 중에서 가장 힘 있는 것은 마음의 소리, 즉 문학만 한 것이 없다. 옛사람의 상상력은 자연의 오묘함에 닿아 있고 삼라만상과 연결되어 있어, 그것을 마음으로 깨달아 그 말할 수 있는 바를 말하게 되면 시가가 된다. 소리는 세월을 거치면서 사람의 마음속에 파고들면 함구하듯이 그렇게 단절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만연되어 그 민족을 돋보이게 한다. 점차 문사가 쇠미해지면 민족의 운명도 다하고 뭇사람의 울림이 끊기면 그 영화도 빛을 거둔다.